남해군 남면 상가리에 위치한 임진성(壬辰城)이 통일신라시대에 첫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남 남해군은 (재)동서문물연구원(원장 김형곤)과 함께 지난 2013년부터 임진성 발굴조사를 실시해 온 결과, 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첫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0호인 임진성은 지정면적 1만6460㎡, 높이 1~6m, 둘레 286.3m 규모로 그간 임진왜란이 격렬하던 지난 1592년(선조 25), 군관민(軍官民)의 힘으로 쌓아 올린 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번 임진성 발굴조사는 문화재청의 허가로 남해 임진성 유적 보존 정비 계획에 따라 실시됐으며, 지난 2013년 문화재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4년에는 체성 내부의 집수지와 수혈건물지 등을 발굴 조사했다.
올해 발굴조사에서는 임진성 체성 내․외벽을 비롯한 임진성 내의 석축시설과 수혈건물지 등을 확인했다.
발굴 조사결과, 자문위원을 맡은 부산박물관 나동욱 팀장과 LH토지주택박물관심광주 관장에 따르면 “임진성 초축의 바른층쌓기 수법과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초축은 최소한 통일신라시대까지 소급될 가능성이 높고 초축의 상부는 조잡한 형태로 축조됐으며, 성 내부에 어골문 기와 등이 확인되므로 이후 고려시대에 수축한 성벽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임진왜란이 일어난 임진년에 축성했다고 알려져 온 임진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됐으며, 이후 고려시대에 수축된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북쪽 체성은 내․외벽을 수직으로 쌓은 협축식 석성으로, 석축의 너비는 약 3m다. 외벽은 암반을 정지해 최하단석을 놓았으며 높이는 약 5m다.
외벽의 최하단석에서부터 약 2m 높이까지가 통일신라시대 산성의 축조수법을 보이고 있다.
길이 약 50㎝ 내외, 너비 약 10㎝ 내외의 세장방형의 면석을 가로줄눈 일직선의 바른층 쌓기 방식으로 조성돼 있다.
외벽 상부는 이후 고려시대 수축과 관련돼 소형의 장방형 석재로 허튼층 쌓기 방식을 사용했으며, 외벽에는 폭 약 1.2m의 외환도로 추정되는 석축이 확인된다.
내벽은 외벽과 마찬가지로 기반암에서 약 2m까지는 면석을 수직으로 쌓고, 수축된 그 상부는 뒤채움돌이 돌출돼 있다.
내벽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지형을 따라 기반토를 경사지게 굴착한 후 성토한 토축부가 확인된다.
체성 내부에는 고래시설이 설치된 통일신라시대 수혈건물지와 성벽의 방향과 평행하게 축조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석축 등이 확인됐다.
특히 다량의 투석용 석환도 출토됐는데, 북쪽 성벽을 따라 길이 약 22m, 너비 약 4m 범위 내에서 3000개 이상의 석환이 확인됐다.
이는 지금까지 성 내에서 발견된 석환으로는 가장 많은 수량으로, 최근 임진성과 비슷한 시기의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에 축성된 남해안의 거제 둔덕기성과 충청북도 단양의 온달산성 발굴조사 등에서도 다량의 석환이 출토됐다.
석환은 직경 10~20㎝ 정도의 둥근 몽돌로 인근 바닷가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되며, 체성 내벽의 초축과 관련된 토축부 상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성벽을 축조한 후 성을 방어하기 위한 투석 무기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군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임진성이 통일신라시대에 처음 축조된 산성으로 확인됨에 따라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체성의 축조 양상과 내부 시설물의 배치와 구조 등은 향후 임진성 정비 복원을 위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임진성 내부에서 발굴 조사된 석환은 향후 다른 성에서 출토된 석환과 비교해 투석용 무기로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군 문화재팀 관계자는 “이번 발굴조사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추가적인 조사를 실시해 통일신라시대부터 초축된 임진성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고 유적의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