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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 신정혜(남해마늘연구소 총괄연구실장)

  • 행정실
  •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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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으면서 곡식도 익어가고, 나무에 매달린 감들도 자신의 색을 뽐내며 익어 간다. 자연은 한 해, 한 해 열매를 내어놓고 시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한해살이 풀들은 죽은 자리에 씨앗을 떨어뜨려 다음 해에 다시 피어나고 죽은 나무에서 새로운 싹이 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로써 생이 마감된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각자의 몫에 맡겨져 있지만 태어남과 죽음은 우리의 선택을 거부한다. 애초에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아무것도 선택될 수 없고, 죽음도 여러 요인이 있으나 스스로가 죽는 날, 방법을 선택할 수도 없어 이 또한 우리의 몫은 아니다.

내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 (일명 ‘웰다잉법’)이 실시되며, 10월 23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 연명의료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연명의료 결정법에서는 담당의사와 해당분야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환자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 환자 본인은 직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분명한 의사를 표명하여야 한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가족 2인이 동일하게 환자의 의사를 진술하거나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함으로써 연명의료의 중단 결정을 할 수 있다.

시범사업 기간 중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연명의료계획서는 작성자의 동의하에 내년 2월 개시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 서비스 시스템에 정식 등재되어 법적으로 유효한 서류로 인정받게 된다.

법 시행이 며칠 지나지 않았으나 벌써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며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는 현대 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심장박동과 호흡을 유지하고, 혈관을 통해 각종 약물을 투여함으로써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이미 사망한 것과 유사한 상태에서 계속 생을 유지하기보다는 본인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더욱 존엄하게 마지막을 받아들이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의 주어진 선택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는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에 건강하게 늙기, 천천히 늙기의 개념을 접목해 적극적으로 건강을 유지·증진하는 ‘항노화’도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적극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살아갈 날들이 길어지고, 선택의 여지가 많아졌기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모든 사람들이 주위에서 우러러 보는 뛰어난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영원한 권력을 가질 수도 없다. 누구나 때가 되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면서 은퇴를 경험하게 된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았을 때, 아주 평범한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았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잘 태어나서, 잘 살다가, 잘 마무리하는 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디쯤에 있을지 모르는 죽음을 잘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더 빛나게 살아내는 멋진 선택을 해보자.

신정혜 (남해마늘연구소 총괄연구실장)